일본 대지진!!!

by 김기복 posted Mar 14, 20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지난 금요일 촬영을 다녀왔더니 우리 집사람이 일본에 지진이 났다고 난리였다.

저녁 약속이 있는 난 그 호들갑을 한 귀로 흘리고 대충 씻고 급히 나가야만 했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 뉴스와 신문을 보고나서야 그게 그냥 일본에서 늘상 발생한다는 그런 지진이 아니라 아주 큰 지진이었고, 그 진도가 일본역사상 최대의 지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일이 지난 지금도 그 피해가 집계되지 않고 있고, 사망자나 실종자가  대강 4만이 넘을 것이라 한다.

 

이 재앙을 보며 크게 느끼고 부러운 것은 그 큰 사건에 대처하는 일본인의 침착성과 대단한 시민정신이다.

보도를 보면 이 와중에 이들은 생필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무너진 도로에서도 길을 건너기 위해 파란불을 기다린다고 한다.

만약 이만한 재해가 우리에게 발생했다면 무질서와 약탈이 횡행했을거라는 추측을 해 본다.

 

이 사건에 대해 우리 철없는 일부 네티즌들은 일본이 과거 저지른 죄에 대한 업보이며 쌤통이고 하나도 동정할 필요가 없다는 댓글을 단다.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이 큰 재앙과 아픔을 밉다고 그런 식으로 표현하거나 반응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일본인들의 피해에 대해 동정하거나 안타까워한다고 해서 혹 친일파가 아니냐는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일본 山口(야마구찌)工業學校 應用化學科를 졸업하고 흥남비료공장에 징용으로 끌려가셨다가 후에 진해 항공정비창에 근무 중 비행기와 공장을 폭파하려다 체포되었다.

이 후 군법회의에서 징역 3년을 언도받고 복역중, 광복을 맞고 석방되셨다.

이 때 고초도 엄청 겪어 한 동안 왼쪽 어깨를 못 쓰셨다고 한다.

이러한 공로로 1977년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셨고, 지금 대전현충원에 묻혀 계신다.

 

일본은 우리 아버지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를 밀고한 작자도 후에 해군 소장을 지낸 당시 일본헌병 보조였고, 고문을 가한 일본 헌병오장도 전 국회의원 신모 - 우리 동기 중 누구와도 친분이 많은 아주 유명한 인간이다 - 의 아버지였다.

할머니를 통해 아버지의 귀중품을 중간에서 가로챈 인간 또한 한국인이었다.

이들과  국수주의 일본놈들과 뭔 차이가 있겠는가?

 

이런 내가 일본을 동정하고 편들 하등의 이유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큰 재앙앞에는 역사적인 미움도 개인적인 원한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에게도 지진은 발생 가능한 일일 것이고, 우리나라가 더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고 한다.

또 일본 서부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우리 동해해안도시가 초토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이들이 남의 일이라고 좋아할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놈들이 역사상 우리 민족에게 아무리 미운 짓을 했고 고통을 주었더라도  이런 재앙앞에서는 우리 모두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다.

정신대 할머니들이 수요일 항의집회를 피해자 추모집회를 한다는 기사를 보고 숙연해지기 까지 한다.

 

극일은 두고 두고 하면 되는 것이고, 지금은 이들과 아픔을 함께 하면 어떨까 한다.

 

 

 *  친구들 게시판에 다분히 주관적이고 머리 아픈 이야기를 남겼다면 너그럽게 이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