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

by 조성원 posted Oct 1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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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금 전 이광석이가 홈 주소를 알려줘 들어오게 됐다. 참 모두들 반갑다. 벌써 30년이 지났는가. 그때는 왜 그렇게 시간이 안가나 하였더니 지금은 너무도 야속한 시간이다. 시간나는 대로 틈틈이 들어오겠다. 기념으로 글 하나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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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산홍엽의 가을. 오색 창연한 빛이 궁궐에만 존재하라는 법이 어디 있던가. 들썩이는 궁궐 밖이 날로 심상치가 않다.  삶의 저변에  표정 없이 살던  무시근한 그 무엇이 반란이라도 도모하려는 것만 같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모름한 민초들을  따로 보아주지 않았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너와 나는 어디에 살든 다를 바 없는 존재라 말하려는 것같이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일까. 죽기 전 미친 삶의 때깔 그 마지막 성난 함성은 또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하여도 바보같이 진정으로 반란은 없다. 천한 삶이  정녕 서러운 것이지 투철한 마음 그 항쟁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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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졸한 수수함으로 번져 온천지를 감격시킨다는 것이 새삼 고맙다. 아니 그 애절한 함성이 처절하여 가까이 들리는 듯하다. 동요한 마음이 그 반란의 편이니 아니 그럴까. 투쟁은 애초 존재하지 않았다. 흐드러지나 하늘거리고 화사하나  처연해지고 마는 넌출진 천생의 것들이 남기는 자취를 어디 항쟁이라 할 것이던가. 너와 나 구분되는 것이 없다는 합당한 이유를 선사하는 단지 한 낱 가을 동화일 뿐이다. 그러기에 가을은 의지이기 전에 숙명이고  갈망이기 전에 체념이다.


고움이 섧고 간곡도 하니  처절한 항쟁을 따른다면 어떨까.  어느 누구든 그 무엇이든 이 가을엔 패망하고 말 것이다. 무심한 하늘이  부릅 뜨고 저 멀리 우뚝 서있으니 감히 어찌하리. 흥건한 마음을 질끈 잡아매는 도도한 하늘. 초초한 아우성과 비릿한 삶의 혼돈은 견고한 색채의 무자비함에 마주한 순간 이내 죽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왜 가을엔 청청의 하늘이 되는지 분명 알 것도 같다. 잠재울 것이 많기도 한 계절, 곱다는 것을 삼키는 것은 너와 내가 아닌 기실 청벽의 하늘이다. 그리하여 목조인 숨통에 낙엽은 산산이 흩어져 차라리 흙이 되어 말하는 것인가.


그 쯤 도공은 서러움  풀어 수천도 불꽃으로 무심한 하늘 대신으로 비취빛을 청자에 안연히 비추었다. 그러기에 청자는 또 다른 지상의 가을이다. 청자의 빛 속에 철새가 날고 억새가 하늘거리고 마음에 단풍이 지며 서러운 삶의 느낌이 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청자로 봄을 연상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가을은 초초한 아름다운 삶의 계절이다. 더럽고 서럽고 아쉬운 것들이 내버려지지 않고 말간 햇살 맞아 곱게 승천하는 특혜를 갖는다. 하다못해 청자 속에서 만이라도 고운 모습으로 살아 하늘로 모두 날아오르고 그러한 청자는 늘 가을 속에 머문다.  <BR>


종전의 아픔이 고운 빛 아름다움으로 변할 절호의 기회를 갖는 이 가을. 그러기에 가을은 마음 놓고 슬퍼할 수 있고 고독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고와질 수 있다. 감옥에서 이제 막 풀려난 성긴 몸이 찾는 자유라한다면  어떨까. 나는  발가벗겨진 자유 속에 황홀이  늘 고맙다.  홀연한 황홀이 탐이 나는 그쯤 우린 가을을 찾기 위해 가을을 오른다. 사로잡힌  가을을 만나기 위해서다. 아니 자유롭게 날아올랐으면 하는 작은 소망에서다.  아름다워 지고 싶고 곱게 간직되는 진진한 마음이 가을 속에 있다.  진즉 그리 할 걸 그러하였나. 자문하며 밟는 소연한 가을이다. 그런 내게 가을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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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물결 타고  하늘에 닿는 가을의 미소를  본다. 모든 이들이 행운을 안은 가을이 된 셈이다.  너와 나는 어디에 살든 다를 바 없는 존재이기에 행운의 미소는 또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 믿어도 될 가을이다. 옹기종기 모여 가을을 말하고 가을 속에서 작은 동화의 주인공이 된다. 설레는 가을을 마음으로 담아 곱게 빗질을 하듯 마음을 예쁘게 쓴다. 처참한 느낌으로서도 결코 가을은 버려지고 모자랄 것이 없다.  심산 홍엽에 젖어 행복하다 하듯 이 가을 황홀의 나락 끝에 버텨서 고독하고 절망하지 않은 사람 또한 별로 없다.  자성으로 자상한 한 나절을 보낸다. 그러기에 가을은 곱다란 마음이 사는 계절이라 하지 않던가. <BR><BR>가을 속에 내가 영근다. 결국 너와 내가 남겨 둔 것은 황홀의 가을이 아니라 가을에 담긴 그리움과 고독이다. 마음속에 철새가 날고 억새가 하늘거리고 단풍이 지며 서러운 삶의 느낌도 고와지는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다. 더럽고 서럽고 소활한 아쉬운 것들이 말간 햇살 맞아 곱게 승천하는 특혜를 갖으며,  천박한 삼류가 고상한 일류가 되는 것은 그 가을의 느낌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종전의 아픔이 고운 빛 아름다움으로 변할  한 해의 마지막 기회이다. 가련하게 버려 둘 것이 이 가을엔 아무것도 없다. 가을은 그 누구든 마음속 청자를 하나 쯤 곱게 새겨두고 산다.  나는 오늘 그 가을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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