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시인과 소설가의 시비
동갑내기 시인과 소설가의 시비
섹서폰 연주를 뒤로 하고 ‘쌍줄기 약수터’를 지나면 오르막 언덕길에 잘 생긴 단풍나무 몇 그루가 서 있고, 또 하나의 시비가 반긴다. 소설가 이병주의 <북한산 찬가>를 새긴 것인데 잡초 무성한 가운데 외롭게 서 있다. 그 위로는 잘 다듬은 잔디밭에 김수영 시비가 새초롬하게 서 있다.
두 문인과 친분이 있던 고 김장호 시인은 언젠가 한 번 “소설가로 돈 잘 벌던 이병주가 낸 술 마시고 집에 돌아가다 김수영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면서, 둘의 시비가 가까이 있는 걸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기곤 했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 그 김 시인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
김수영 시인이 죽은 날짜는 1968년 6월 16일. 시비는 1년 후인 1969년 6월 15일 현대문학사가 주관하여 전체 문인들의 뜻을 모아 세웠다. 고인의 육필과 함께 생전의 얼굴 부조까지 한쪽에 넣어서 금방 눈에 띄는 ‘작품’이다. 매년 기일이 되면 가까웠던 문인들과 가족이 이 자리에서 추모하는 모임을 갖기도 한다.
김수영 시인이 도봉산 자락에 이사 온 것은 생활고 때문이었다. 서울이지만 촌이나 다름없던 도봉동에서 양계업과 번역 일로 생계를 잇고자 한 이사였는데 그게 마지막 이사가 되고 말았다.
잘 나가던 소설가 이병주는 말년에 도봉산과 북한산을 자주 찾았다. ‘친구의 배신’과 ‘애인의 변심’이 모두 자신이 그리 했기 때문에 초래한 결과라고 후회하는 그의 <북한산 찬가>에서는 노년의 쓸쓸한 심경이 절절이 묻어난다. 아무튼 1921년생으로 동갑내기 술친구이기도 했던 시인과 소설가는 죽어서 시비로나마 나란히 서서 쓸쓸함을 달래고 있다.
김수영 시비 바로 위쪽은 서울특별시에 현존하는 유일한 서원, ‘도봉서원’이다. 1970년대에 새로 지어서 그리 고풍스럽지는 않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4백년 역사의 무게가 서서히 다가오는 곳이다. 오후의 비끼는 햇살을 받으며 단아하게 자리한 서원 오른쪽에는 2백 년 된 느티나무가 말없이 세월을 증거하고 있다.
[출처] 도봉산|작성자 Originalpl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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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찬가 가 아니고 북한산 찬가라고...ㅎㅎㅎ
그래 이제 잊지 않을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