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관하여

by (樂山)김우선 posted Sep 2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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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사과, 뉴튼의 사과, 세잔느의 사과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세 개의 사과라면

가장 유명한 꽃은 무엇일까?

그 중 첫번째는 '염화시중의 미소'로 유명한 부처님의 연꽃이 아닐까 싶다.

 

부처가 어느 날 1250명의 대중 앞에서 말없이 치켜들었던 연꽃 한 송이는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되면서 깊은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특히 당시 1250명 가운데서 말없이 미소지었던 마하가섭존자가 있어서 염화시중의 미소는 완성되었고...

 

베트남의 승려 틱낫한의 글을 읽다 보니 그가 30여년 전 사이공에서 만난 28세 청년의 시를 인용하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Standing quietly by the fence,

you smile your wonderous smile,

I am speechless, and my senses are filled

by the sounds of your beautiful song,

beginningless and endless.

I bow deeply to you.

 

여기서 'you'는 한 송이의 다알리아 꽃이다.

아침 무렵 어느 집 담장을 지나치다가 만난 아주 작은 다알리아 꽃 한 송이를 보고 깊이 감동하여 그 자리에 멈출 수 밖에 없었으며, 그 감동을 시로 남긴 것이라고 한다. 틱낫한은 염화시중의 미소와 사이공 청년의 꽃에 관한 시를 예로 들면서 행복과 기쁨, 깨달음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현재 상태에서 집중하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내 유년 시절의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휴전선이 가까운 어느 마을이었고, 학교 가는 길에는 흔히 보이는 게 검붉게 녹슨 철조망이었던 곳이다. 군용 트럭이나 탱크가 오가는 신작로는 늘 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던 그런 기억과 더불어 꽃에 관한 시를 썼던 그 사이공 청년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물론 사이공은 한때 월남의 수도였고, 그가 묘사한 fence는 하얀색  프랑스식 목조 담장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유년시절 이래 나에게 각인된 fence의 이미지는 더러 옷이 찢겨지고 상처를 입히기도 했던 '철조망'이었던지라 꽃과 fence의 대조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꽃은 아름답다.

꽃을 보면 누구나 미소짓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한다.

현재의 그 느낌에 충실한 것(틱낫한의 표현대로라면 mindfulness)

그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