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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부음에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고교동창인 녀석은 온몸에 상처투성이였다.
심성은 착한 친구였으나 누구에게 무시당하는 걸 못 견뎌했다.

그가 또 상처를 크게 당했다고 해서 친구 두 명과 함께 집에 문병간 적이 있었다.
응암동 백련산 산동네였다. 그의 집까지 가는 길이 만만찮았다.
교복 입고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이곳저곳에서 왈짜패들이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
그럴 때마다 동행한 친구가 “우리 영수 친군데”라고 말하면 그들은 순순히 길을 터주었다.
“야, 영수 친구라고 말하지 마. 걍 한번 붙든지 C-Bar.”
짜증이 난 다른 친구가 소리치자, 금세 주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래도 갈 때는 별일이 없었다. 갈 때는.
친구 엄마는 녀석과 달리 수수한 인상에 얌전한 분이셨다.
그분은 우리를 깍듯이 대하며 저녁을 차려주고 따로 소주 한 병을 올린 술상도 내주셨다. ...
“한잔씩들 목만 축이고 가.”
깜짝 놀라서 사양했지만, 그분은 괜찮다며 마시라고 나가셨다.
“자, 마시자.” 상처 입은 배에 붕대를 칭칭 동여맨 녀석이 소주병을 잡는 걸 빼앗아
술상을 방밖으로 들고 나가 어머니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저희가 마시면 영수도 마실텐데 상처에 덧나요.”
“아이고, 좋은 친구들이네. 영수야, 이분들 봐라. 모습도 그렇고 마음씀도 그렇고 다들 선비 같으신데,
왜 너만 이렇게 깡패 같니?”
‘선비 같으신데’란 말이 오래 잊히지 않았다.
어쩌면 이후에 내 행동거지가 조금 나아졌다면 그 어머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집에 어머니뿐이었다. 홀어머니가 아니었을까...
바래다주겠다는 녀석을 눌러앉히고 집을 나섰다. 허정허정 산길을 내려오는데,
어둡고 후미진 곳에서 칠팔 명의 패거리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싸움이 벌어지고 냅다 튀다가 버스에 올라탄 뒤에야 내 교모가 없어진 걸 알았다.
그 교모는 나중에 영수가 찾아다주었다.
응암동 버스터미널에서 구두닦이가 삐딱하게 쓰고 있더라고.^^

오늘 영수가 죽었다.
암투병으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은 가지 못하고 작은 성의만 보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문자가 왔다. ‘고맙다. 어제 퇴원.’ 짧은 문자였다. 6월 2일이었다.
좋아진 줄 알았고 올해는 영수를 보러 동창회 송년모임에 나갈까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사납게 흐른다.
나이 오십이 넘은 이후로는 봇물 터진 것처럼 빠르다.
이런 부고가 늘어날 것이다.
어쩌면 그게 내 소식일 수도 있다.
숨을 깊게 들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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