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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교착점인 서울역.  청국장의 촌 냄새와 하얀 비누냄새가 같이 공존하는 그곳엔 늘 사연이 그득했을 터 과거에는 그곳에서 첫 장면이  시작되는 영화가 의외로 많았다. 예나 다름없이 지금도 그곳은 사연 많은 이별의 장소 일 번지임에는 틀림이 없을게다. 하지만 그 시절처럼 절절한 이별이나 정감은  더 이상은 없지 싶다. 문명의 발달은 이별 또한 그저 그런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오늘도 나는 그곳에서 헤어지는 한 모습을  본다. 돈을 뿌리치는 노인과 억지로 돈을 호주머니에 쑤셔 넣는 젊은이. 그들의 흥정이 고소하고 즐겁다. 그 틈바구니에서 흘러나온 말은 담배 값 밖에 안돼요. 라는 말이었다. 담배 값. 그러고 보니 참 오랜 만에 들어본다 싶다. 그 말은 필시 그 분위기에선 적은 돈이니 부담 갖지 말고 챙겨두라는 것을 의미할 게다. 담배 값은 담배 값 인상이라 표기하면 그 자체 담배 값을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실제로 담배 값은 그 담배 값 그 자체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지금은 어림도 없는 것이지만 한때 순서를 뒤바꿔 급행이라는 것으로 서류를 바삐 얻어낼 때나 켕기는 것을 무마하는 식으로도 그러하고 공사판에서 시멘트를 조금 거저 얻어 낸다 던지 아궁이 손질을 부탁하던지 하는 아쉬운 상황에서 일로는 큰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일을 부탁하는 경우나 그릇된 것을 잘 말해 덮어두려 할 때  담배 값이란 명목으로 들이밀고 일처리를 하곤 하였다. 일종의 뇌물인 셈인데 담배 값이라 버젓이 말하는 것은 이는 결코 뇌물을 줄 상황은 아니고 돈으로서도 아주 적은 돈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래서  청하는 정도의 것이란 것을 넌지시 암시한다.




그 시대엔  뇌물이 그야말로 흔한 세상이라 담배 값 정도는 눈치껏 알아서 해도 무방하였으며  무리라고 보지를 않았던 것도 같다. 경우에 따라 틀리겠지만 금액으로 쳐서 실제 담배 값 보다 많고 통상 생각하는 뇌물액수 보다는 적은 그런 정도의 대가에 해당 된다. 뭐든지 넙죽 받는 것은 달콤함에 쉬이 까먹고 주는 것은 아쉬움에 오래 기억되어 남는다. 그래서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담배 값을 받은 것은 기억에 없는데  몇 번의 담배 값을 건넨 것은 기억한다.  그 당시 제일 흔한 것이 순경에게 교통위반의 무마대가로 건네는 담배 값이었다.




자동차면허증이 든 수첩 사이에 돈을 껴 넣고 다녔었다.  한 번은 명절 때 청주쯤에선가 교통경찰한테 걸린 적이 있다. 수첩을 건네려 하였더니 수첩은 아니 받고 경찰나리께서 씩 웃으며 그렇게 가시면 사고 납니다. 잠시 내려서 심호흡을 하고 가시지요 하는 것이었다. 그 상황 바로 눈치를 못 챘는데 그가 시킨 대로 내려서 수첩을 돌려받는 순간 자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때 뒤에는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 나는 그가 비록 담배 값은 챙겼지만 꽤 고마웠었다.




어느 영화에선가 본 것인데  채소장수가 경찰에게 대충 정해진 담배 값 오천 원을 건네려 하였더니 잔돈이 없는 거였다. 그러자 그는 5천원을 거슬러 받는 조건으로 경찰에게 돈 만원을 건네었다. 그런데 경찰은 돈을 챙기자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화가 난 채소장수는 확성기를 들고 민주경찰 5천원은 거슬러주세요 하며 경찰차를 쫓는 장면인데 지금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뇌물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쳐지지만 통상 담배 값은 등기소에선 얼마 경찰은 얼마 촌지는 얼마 하는 식으로  오픈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당시 담배 값에 대해서는 다들 그러려니 하고 죄란 느낌에 겁을 안 먹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런 담배 값도 담배 값 나름이란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의 끈은   십여 년 전 우리 동네 우체국에서 아주 짤막하게 본 어느 장면때문이다. 나는 그 때 들었던 담배 값이란 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가 뒤늦은 연하장을 한꺼번에 부치러 갔던 때이니 새해 초 아니면 설날이 다가설 무렵이 아니었겠는가 싶다. 웬 사내가 돈을 부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런 사내는 바로 옆 전화통으로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흔히 보는 풍경이라 별 신경을 안 쓰고 그런가보다 하고 기다리는 내내 앞을 보기만 무료하여 그를 힐끔 바라 볼 뿐이었다. 그는 필시 돈 부친 것을 말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의 비교적 큰 소리의 끝말이 이를 반증하는 것이었다. “담배 값이나 조금 부치우.” 그런 그가 돌아서 나오는 때 나는 흠칫 놀랐다. 분명 그는 울고 있었다.  그의 눈물에 끝말이 덧붙여져 나까지 금세 우중충해지는 노릇이었다. 그는 창피함을 느꼈는지 뒤도 안돌아보고 이내 총총히 사라졌다. 십 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우체국 앞을 지날 때면 누군지도 모를  그가 소상히 떠오르고 그 끝말이 생각난다. “담배 값이나 조금 부치우.”




‘부치우’ 라 하는  말을 어느 지방서 쓰는 지 잘 모르겠으나 느낌 그대로 투박함이다. 그는 그 말처럼 속내도 잘 드러내지 못할 그런 투박한 사내로 보였었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이 그의 사정을 또한 잘 대변해주고도 있었다. 필시 가까운 누가 죽었거나 명절이 다되어 부모에게 돈을 부치는 것이었을 게다.  그런 그가 부친 돈은 고작 담배 값 정도이다. 고향을 어쩔 수없이 떠나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신세에 보내는 것이 담배 값이라 한다면 아무리 억센 사내라 해도 그런 명절쯤엔 남몰래 흘릴 것이 눈물이란 생각이 든다. 실로 애석한 마음 저리는 담배 값이다. 나는  그보다 더한 담배 값의 의미를 이후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세상은 이별을 별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고 또한  없는 삶의 애틋함도 모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앗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젊은이와 헤어진 앞서가는 노인의 흐뭇한 미소가 한결 부드럽다. 아마도 이는 담배 값도 담배 값이지만 젊은이가 나타낸 정감이 마냥 따스하여 그러할 것이다. 그런 쯤에 담배 값이라 한다면 다시 부활해도 별 탈이 없지 싶다. 그때는 억센 사내의 눈물이  안타까움이었는데  오늘은 왠지 따스한 맑은 이슬처럼 새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떠오르는 말. “담배 값이나 조금 부치우.”그 말은 곱씹어도 달기만 한 분명 고향을 향하는 눈물겨운 사랑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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