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22 09:14

술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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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천지 술이 없는 곳이 없다보니 술 마시는 사람도 지천에 널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술을 마신다고 해서 모두 술꾼이라 할 수는 없다. 온 동네가 병나발이라 누가 진정한 술꾼인지 다들 헷갈릴 뿐이지 이 시대 진정한 술꾼들은 엄연히 따로 존재하고 누가 뭐라 하든 잠잠히 제 갈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신다고 술꾼이라 할 것이 아니며 매일 밤 밥 먹듯 한다하여 술꾼이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술꾼들은 몇 가지 고유한 습성이 있다. 술꾼이 될 자질은 그의 품성 多情多感을 따져 보면 바로 안다.


대개 술꾼들은 천성이 유들유들할 것으로 생각들을 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만약 유들유들한 기품이 보인다면 호색의 길이 보다 더 낫고 맞다. 한마디로 말해 전혀 느끼하지 않은 인생들이 술꾼들이다. 평상시 서먹서먹하고 다정다감하지 않다면 오히려 술꾼으로서 기질이 농후한 것이다. 대개 말 주변이 떨어지고 과묵하고 말이 더딘 사람들이 술꾼 중엔 많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툴다 못해 안쓰럽다 싶다면 그는 술꾼으로서는 큰 재목감이다. 그런 그들이 밤의 시간 술로서 견뎌내며 씻기고 닦아져 비로소 다정다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낮과 밤 다정다감으로 구분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이는 필시 큰 술꾼임에 틀림이 없다. 마음의 상처나 흠집을 말짱하게 해주는 보약이 바로 그들에겐 술이다. 그런 그들이 어찌 술을 업신여길까. 피 같은 술이라 하는 것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한 술꾼들은 명분을 꽤 중시 여긴다.  술 생각이 난다고 무턱대고  마시지 않는다. 마셔야만 하는 사유가 분명히 존재하고 명분으로서 술을 마신다. 이런 데에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원래 술이란 귀한 손님이 찾아오거나  아주 중요한 잔치나 행사 때 겨우 마셨던 대상이다. 그 풍속이 중한 가치로 자리매김을 해서 명분이 꼭 필요하게 되었다는 고전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술만을 즐기고 찾는다 하여 핍박과 서러움을 겪다보니 꼭 필요한 것이 마셔야만 하는 명분이었다는 현실론이다. 어쨌거나 술꾼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이를 발굴하는 것이 큰 과제이다.  구질구질한 날씨가 명분이 되도록 한 것은 술꾼들이 일구어낸 가장 큰 수확이다. 지금도 이 명분은 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술꾼들은 술에 신음 하는 것이 아니라 명분이 바닥이 나 이 때문 고민한다. 대개 술꾼들은 주기성을 갖고 있다. 때가 되면 자연 입이 근질근질하다. 평소 말도 적으니 입만 쩍쩍 다시며 명분을 노리는 것인데 같이 할 술꾼 또한 명분을 찾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러한 때는 상호 팽팽한 탐색이 전개된다.


기실 마셔야 할 마땅한 명분이 없기 때문 누구든 먼저 청하면 명분에서 지고 바가지를 쓰는 꼴이 된다. 술꾼들의 약속이 졸지에 느닷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다 그런 이유에서다. 3일 전 마셨으니 발동이 걸릴 것인데 무반응이다 싶으면 예의주시하게 된다. 3일 사이의 행적을 추적하게도 된다. 분명 마셔야 할 타임인데 가만있는 것이라면 그 역시도 꾹 참고 명분을 찾으며 상대방을 살피는 것이다. 그럴수록 침착하게 바쁠 일이 있는 것처럼 하거나 거드름을 펴 상대를 초조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를 압박하는 것이다. 자존이 결부 되는 상황에 이른 시점은 거의 퇴근 시간이 다 된 무렵이다. 드디어 그가 당황하여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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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시간에 쫓긴다고 표현이 결코 직설적이지는 않다. 넌지시 운을 떼 상대방 형편을 살피며 여전히 먼저 걸려들기를 바란다. 마른하늘을 괜스레 끄집어내보기도 하고 지쳐 보인다는 동정의 말에 공연한 칭송까지 거들먹대며 다가온다. 그 상황 바로 장단을 맞추어서는 곤란하다. 엄살을 부려 억지로 끌려 간다하는 심중을 분명히 남겨두어야 한다. 변명의 구실을 그에게 모두 전가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기실 누가 걸려든 것인지 아리송한 말이지만 이제 걸려든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작당은 불과 수십 초를 안 넘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행선지에 모일 꾼들이 다 정해진다
누가 청한 것이냐는 술값을 염두에 두는 격도 되는 것이지만 판이 펼쳐지면 술꾼들에게는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 보다도  심리전에서 이긴 쾌감이  꽤 고소하다는 것을 술꾼들은 제대로 안다.  당연 스스로도 술 생각이 간절했음에도 참아내어 위장하여 전가하는 묘술이 살뜰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하는 몇몇 술꾼들은 그런 승부에 아주 능통하다. 명분이 있고 명분으로 술과 자존을 차지하고 지켰다. 그런 그들이기 때문 술꾼이라 하여 터벅대며 대충 마셔대는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아주 심리적으로 치밀하고 섬세한 기질이 다분히 넘친다.

그런 그들이 수 십 년 부어라 마셔라  하여 견뎌 낸 것은 단지 속뿐이 아니다.정작 견뎌낸 것은 마음이다. 그들은 술과의 독대로 수십 년을 버텨낸 엄연한 장인들이다. 비록 핍박은 받고 살지만 우습게 볼 위인 들이 아닌 것이다. 그들이 그쯤 만나는 술의 환상은 가히 예술이다.  전통과 정통으로서 단연하지만 자연스런 연기가 농밀하여 좀처럼 흉내 못 낼 위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쯤에 이른 장인이란 그 누구든 모름지기 손끝이나 혀끝으로 솜씨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측은지심에 이심전심이고 때론 유아독존에 천방지축이며 유유자적이다. 넘나드는 삶의 향취가 쉽게 터득할 것이 아니다. 험한 꼴부터 갖은 풍상 안 겪은 것도 거의 없기 때문 경우에 맞춰 잘도 논다.


술꾼은 바로 경험으로서 말을 한다. 풍류에 풍월을 싣고 살가운 운치에 젖어든 술 맛이 교교한 달밤에 춤을 춘다. 시간이 세월아 네월아 한다. 넉살은 해학이고 궁색은 철학이 된다. 허름한 시장 통도 고상한 카페도 그들로써 생기가 돋고 빛이 난다. 수십 년 무탈하게 섭렵한 구성진 연출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멋들어진 풍류객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쯤이면 동네 술꾼 돈 안 받고 너 댓 키울만하지 않은가. 오늘도 나는 그 연출을 기대한다. 하지만 섣불리 나섰다간 바가지 옴팡 쓴다. 그러니 참고 또 참으며 정탐을 한다. 그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 수상하다. 어제 분명 조신하며 일찍 귀가를 한 그인데 영 무반응이다.


그렇다면 그도 나를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에게서 전화다. 술을 하자는 것은 아닌데 말이 심상치가 않다. 내일은 고기 먹으면 안 되는 날이라 조용히  집에만 있겠다는데 그 다음 말이 없다. 고기 안드시면 그만이지 그 말을 왜 나한테 하는가. 말도 안 되는 명분이 술꾼들에게는 자연스럽게 통한다. 이제는 그에게 맞장구를 쳐주는 것만 남았다. 결국 오늘 나는 할 수 없이 삼겹살 안주 삼아 술 한 잔을 해야 할 모양이다. 술꾼들은 그러기에 말이 명분이지 모두 한 통속이다. (2007 5 23석가 탄신일 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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