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26 19:49

슬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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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안톤 시나크의 작품. 그 붉은 질감의 센티한 감성을 나는 정녕 잊지 못한다. 학창시절 그 글과 같은 제목의 글을 작성하여 낭독을 한 적이 있다. 차분하면서도 아픈 그 차가운  감성에 매료되어 같은 느낌을 자아내본다며 이틀을 꼬박 세워 글을 만들었었다.  글 좀 쓰는데 하는 소리를 그때 처음으로  들었다. 그 연유로서 친구들에게 꽤 알려진 문학적 기질로 통하였다. 요즘 틈틈이 글을 쓴다하니 그때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는 친구들이다.




그 시절 안톤 시나크에 대해 갖았던 상념은 누구든 그리운 것일 게다. 나는 그때 무슨 마음의 슬픈 흔적을 남겨 두었던 것일까. 떠오르지는 않지만  먼 기억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의아하다.  세상은 변하였지만 예나 다를 바 없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늘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에 보는 그 글은 차라리 꽤 검소하고 수수한 정서와 마음의 정성이 있다. 이는 어쩌면 그런 고유한 슬픔들이 슬픔으로서 하나 둘 사라지는 현실이라 그런 느낌이 우선 하여서인지 모르겠다. 정녕 슬퍼할 것들이 이제는 별로 없는 세상이다.




왜 사람은 슬픔을 갖고 사는 것일까.내가 슬픔에 대해 진진하게 생각해본 것이 바로 그때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 슬픔이란 사람이 죽고 병들고 아프다는 기존에 갖았던 통상적인 상념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를테면 “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어느 문설주의 삭은 나무 위에 거의 판독(判讀)하기 어려운 문자를 볼 때, ” 란 글 원문에 나오는 글귀처럼  슬픔에 대해 직접적이거나 직관적인 표현은 아니었으나 꽤 아픈 것이었다. 그런 느낌의 것이  슬픔으로서 다가온다는 것이 순진하였던 당시로서는 기이하였지만 그래서 더욱 오랜 느낌의 것으로 남았다.




슬픔이란  궁색한 처한 현실이나 외롭고 쓸쓸하다는 삭막한 조건으로서도 얼마든지 슬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러한 인식이 곧 바로  나의 감성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쯤부터서 그러한 감성의  질감을 줄곧 사랑하여왔다. 글이라고 쓰면서  죽고 아프고 병든 구석을 그야말로 가슴 찢어지는 고통으로서  들춰내는것 말고도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럽게 눈물을 자아낼 서정을 그려내고픈 욕망이 끊임없이 생기는 것은  바로 그러한 감성의 질감과 맥락이 같은 것이다.내 마음에는 필시 원천적으로 그러한 슬픔이 자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빛에 그림자가 따라 붙듯 슬픔에는 눈물이 있다. 그것들의 관계는 떨어질 수없는  종속의 관계이다. 그림자가 생겨나 빛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눈물이 생겨나고 슬픔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슬픔과 빛은 그 스스로가 주체이다. 그들은 둘 다 그러한 자연적 현상이면서 하나는 이성적으로 귀납하였으며 또 다른 하나는 감정으로 귀납하였다. 빛의 투과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슬픔은 설명이 가능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에서 나는 감정의 멋대로 인 자유와 다양한 사고를 느낀다. 감정은 알 수 없는 마음속에 자리하고 슬픔 또한 그러한 속성을 가졌다.

알 수 없는 마음에 사는 슬픔, 이를 알자면 눈물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눈물은 빛과도 같이 환한 기쁨에도 눈물이 나고 어두운 그림자 같은 수심에 찬 마음에서도 눈물이 난다. 눈물은 그러니 슬픔의 독차지가 아닌 격앙된 감정의 표출인 것이다. 이를 카타르시스라 하던가. 하지만 대개 슬픔하면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를 먼저 연상한다. 묘하게 빛의 그림자와 슬픔은 한 형제인 양 가깝고 같은 맥락이라 여겨진다. 이는 빛이 차단되어 형체의 까만 색채의 그림자를 거짓없이 그대로 만들 듯 내면을 쓸쓸하고  암울하게 드러내어 보이는 얼굴의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 마음의 본질은 늘 슬픔인지 모른다.  

빛과 같은 기쁨이나 즐거움은 고작이고 외로움에 슬픔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  우물처럼  퍼 덤아도 늘 그대로이고  그리고 그렇게 마음의 표출을 두레박으로 퍼 올리듯  친숙하게 길들여 놓은 것이 눈물이 아닌가.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태어나 맨 처음 한 것이 울음이라는 것이 이럴 때 실감나게 느껴진다. 요즘 나는 우수에 찬 얼굴이 곱게만 느껴진다. 해맑은 웃음을 마다할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때를 그대로 아픔으로 보듬은 채 웃는 얼굴이 보기가 더 좋다.

이는 그가 지닌 어느 슬픔이 나의 또 어느 외로움과도 닮아 있을 것이란 동정적 추상에서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도 슬픔을  내면에 지닌 사람이라면  마음 또한 아픔의 깊이처럼  촉촉하고 따사로울 것이란 애틋한 기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슬픔에는 정녕 고귀한 영혼이 살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어디고 투과되는 거칠 것 없는 빛이라 한다면 그것처럼 단순명료한 비참한 행로는 없지 않을까. 빛에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천만다행한 것이다. 꺾여서 어둑해지고 아파보아야 빛의 기쁨을 제대로 안다. 그늘의 고마움은 빛의 존재로서 또한 아는 것이다. 그림자로 인하여 밝은 빛이 찬란하듯  마음에 슬픔이 있어 영혼은 더욱 고귀하다. 슬픔은 여린 영혼을 정화시키고 아름답게 가꾼다.

이제 나는 왜 인간은 슬픔을 지니고 살아야하는 것인가에 대해 어느 의문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애틋한 슬픔이 사라지는 것 같아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결국 안톤 시나크의 작품은 그 시절에는 그 자체가 소소한 서글픔이라 하였지만 지금에서는 아름다운 영혼을  순순히 검소하고 질박하게 나타낸 그야말로 아름다움이란 생각을 한다. 그러기에 나는 지금 산 그림자 짙은 어느 골짜기에서 빛의 가장자리를  찾아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며 내면에 드리운 어느 슬픔을 주섬주섬 담으며 그럼에 그것으로서 나는 비록 아프지만 차라리 행복하다 한다.  아픈 마음에 언뜻 빛을 쫓아 바라보는 해질 녘 붉게 물든 저녁놀이 곱다.  이 또한 어느 슬픔을 하나쯤 그렇게  자연스레 잉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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