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17 17:19

늦가을의 독주

조회 수 2776 추천 수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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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교차 심한 계절. 새벽녘 바람이 차다. 호들갑스럽고 혼잡한 명절맞이가 마음속까지 어수선하게 한다싶더니 돌아온 일상은 하루를 못참고 딱딱해져버린 송편 마냥 이내 굳어버렸다. 잠시의 빗줄기에 가을바람이 다소곳했지만 초초한 마음을 다스리기엔  역부족이다. 요사이 나는 찬 서리 같은 차분함을 감추려 애쓸 필요 없이 쉽게도 차가워지고 어느 때는  너무도 들뜬 하얀 눈 위의 강아지가 된다. 혼탁한 정서는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일교차 심한 가을바람이다.

며칠 쉰 사이버 알림 공간엔 어느 이별들이 목석같은 전봇대마냥 오도카니 지켜서 있다. 계절이 바뀌면 들려오는 것이 이별 소식이다. 일교차 심한 환절기엔 더더욱 그러하다. 겨울바다처럼 스산해 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가라앉은 난파선. 어수선한 나이에 이별은 쉬운 일상이다.  하지만  견디기 힘든 아픔인 것 또한 사실이다.  하루하루 어느 것 하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다.  떠나가고 사라지고 지워지는 것들이 가슴 떨리는 갈대숲을 이룬다. 하늘대다가 스러질 그런 숲. 그러기에 더욱 참혹하다.

만남과 떠남은 많은 인연이 쌓여 이루어지는 운명의 편린이라 하던가. 이러한 모든 것들이 자연의 섭리로서 예정된 수순의 여로라 한다면  죽음 또한 삶의 선험적 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눈 질끈 감고 입 꼭 다물고 죽음도 익숙한 삶의 여로라 해두자. 그래도 비수처럼 내리 꽂는 아픔은. 욕망의 이지러진  환멸과 자학 그리고 그 황량한 절규의 끝에 죽음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것만으로도 죽음은 넘쳐나고 많다.  그런데 평온과 사랑 그리고 희망에도 죽음이 다를 바 없이 또 들어있는 것은.  순한 정서가 아픔으로 찢겨져 허망을 만들고 폐허로 스러진다.

그러하여 낙엽 한 잎에 세월도 한 뼘이라는 이 가을!  나는 창백한 기억들이 그리움으로 동화되는 상상의 가을 속에 갇혀 숨죽여 지내고만 싶다. 세월은  정녕 나의 편이 아니다. 설움 삼킨 붉은 울음 춤사위 무성한 그 삶의 골짜기. 벌써 낯익은 객 저만치 와 서성인다. 달아난 세월이 속도 더 붙어  출렁인다.  농익어 넘치어버릴  만추의 서정은 그러기에 애늙은이에게는 큰 슬픔이다. 파헬벨의 낭랑한 캐논은 잠시 만에  차이코프스키의 슬픈 비창으로 변하였다. 황홀은 이내 죽은 환상이 되는 것이다.

환상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연주한다. 가을은 그래서 나에겐 낭만도 아니고 고독도 아닌 그저 폐허의 슬픔이다. 차라리 찌든 세속을 용감히 물리친  죽음이라 부르자. 죽기 위해 얼마나 화려할 수 있으며 죽음을 맞기 위해  얼마나 불타야 하는지. 가을이 그 혼돈을 자축하는 것을 나는 이제 알것만 같다. 가을의 연출처럼 부드럽지만 무서운 가을바람에 사무친 이 세상은 진혼곡을 마저 들을 차례이다. 그러기에 떠날 시간을  달래는 청승이 따로 필요할지 모른다.

변화 심한 공간 속에서   이별을  간직한다는 것은 음침한  밀실에서 마시는 지독한 독주가 아니라면 그야말로 견뎌내기 어렵다. 쓸쓸히 비 맞으며 가을 늪으로 떠난 낙엽과도 같은  체념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나는 가을과도 같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진한 술을  골방에 따로 준비할까한다. 나울나울 타오르는 단풍처럼  50도짜리 혀끝이 녹아드는  아주 독한 술로써. 정말 일교차  심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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