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31 23:34

사당동 전철행

조회 수 2691 추천 수 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서울에 오르는 날은 가기 전 부터 들뜬다. 이것이 촌사람의 행보가 아닐까. 사당전철역 쪽을 가야하는데 고속버스에서 내리자  선뜻 방향을 못 잡겠다. 서울사람들은 훤히 꿰는 전철 망이겠지만 촌놈에게는 어렵고 복잡하기만 하다. 전철 티켓도 실수할까봐 자동발매에는 손이 안가고 창구를 찾는다.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것이 나 같은 사람들도 꽤 되지 싶다. 가는 곳을 확인 받고 비로소 전철에 올랐다. 그래야 마음이 놓이는 것은 단지 촌놈이라서가 아니라 성격탓인지도 모르겠다.

교대역에서 갈아타서 세 정거장 더.  3호선에서 하나 2호선으로 셋 가서 그리고 6번 출구. 외우듯 머릿속에 주문을 한다. 그렇게 행하여 교대역에서 갈아타고 2호선에 올랐다. 선다는 것이 경로석이다.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지만 내 차지가 되기는 이른 자리다. 누군가 비집고 들어섰다. 환갑은 넘은 듯한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 한 분이 자리에 앉는다. 그의 손에 들려진  팜플렛과 책 한권이 가을 햇살처럼  따사롭다.

그 나이에 책을 든 사람들을 마주한다는 것이 보기가 힘든 세상이다. 그러한 느낌의 책이라서 포근하여 그렇기도 하지만 실은 팜플렛이 그가 누구쯤인가를 각인 시켜주었기 때문 가깝게 느껴졌다. 팜플렛에는 ‘16회 대산문학상 시상식’ 이란 글이 적혀있었다. 그러하다면 필시 그는 상을 받는 대상자이거나 아니라 해도 글 쓰는 것과 유관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 그는 앉더니만 옆을 슬쩍 살핀다.  자리가 옹색하여 그런가 하고 그때서야 나도 옆자리를 보았다.

바로 옆 또한 그와 나이도 엇비슷해 보이는 신사 한분이 앉아 있다. 잠바 차림이 아닌 것이 그 또한 흔한 외출은 아니지 싶다. 직업이 선생님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를 살피던 그는 불쑥 말을 건네었다. 말한 내용이 정확히 들리지는 않는데 어디를 가는데 어찌 가는 것이 좋겠느냐 하는 말이다. 말을 들은 그가 바로 아는 대로 설명을 한다. 그러자 그가 재차 질문이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가 안다싶으니 그 근처가 아닌 가는 목적지를 대고서 묻는 것 같다. 그쯤에서 그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자 물었던 그가 택시를 타고 가면된다고 하고는 고맙다 한다. 그렇게 그들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팜플렛을 든 신사는 책을 펼치고는 이내 독서에 빠져 책 내용 따라 배시시 웃음이다. 그런데 옆자리 아저씨 표정이 재밌다. 탈 때 무표정하게 보였던 얼굴 모습은 어디로 가고 눈을 감고 찌푸리고 손으로 연실 코를 쓰다듬으며 어느 생각에  열중이다. 그러더니 그는 가방을 열고 업무수첩을 꺼낸다.  수첩의 맨 뒤에 있는 지도를 펼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의 대화가 스스로도 미진하다 싶었던 모양이다.  어찌 가는 것이 빠른 것인지 이리저리 따져 보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정작 걱정을 해야 할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듯 배시시 웃음까지 흘리며 책을 보는데 화두를 받은 사람은  생각에 빠져 열심이다. 잠자는 사자 코털을 건드린 격이라고나 할까. 이를 지켜보자니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생각을 마무리하였는지  진지한 표정의 그는 지도를 책을 보는 사람에게 갖다가 들이민다. 그쯤 나는 지하철에서 빠져 나왔다. 걸으면서도 그 광경에 웃음이 또 나온다.

사람들은 모습도 다르지만 성격도 참 제각기이다. 느긋한 사람이 있고 급한 사람도 있고 치밀한 사람이 있고 덤벙대는 사람도 있다. 낙천적인 사람에 비관적인 사람에 이 세상은 오묘하게 엮여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그와 그가 성격이 바뀐다면 모두 다 못견뎌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와 그가 똑같다 하면 아마도 이 세상이 또 못견뎌낼 것이다. 이 세상은 다양해서 좋고 달라서 좋은 것이 아닐까. 모처럼 만난 모임에서도 의견들은 제각각이었다. 그러하여 더욱 좋아보였다.

내가 달라 남이 나를 달리 보는 것이 즐겁고 남이 달라 내가 그를 다른 면으로 생각하여 좋았다. 흔히 의견이 다르다하면 이질적인 것으로 분류하고 때로는 멀리 하기도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 확실한 이유는 어차피 우리는 모습도 다르고 성격도 제각각이란 데 있는 것이 아닐까싶다. 그래서일까 집회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Y작가는 이미 태평스럽게 그가 끄집어 낸 화두를 잊고 벌써 잠이 들었을 것이지만 나는 내내 그 생각에 빠져 나오지를 못하였다. 그러기에 사람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성격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같은 사당동 전철행을 탔지만 다 탄 이유가 다르듯 그렇게. (2007 10 25)



** 내 홈은 www.glmh.co.kr 메일은 swcho2@kaeri.re.kr**

자유 게시판

자유로운 이야기, 하고싶은 이야기.../로그인 사용자만 보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홈페이지 로그인 안되는 동문은 4 (梅山)권화현6 2014.05.26 34323
공지 보이스 피싱 급증... (梅山)권화현6 2014.02.19 14302
공지 사랑방 주소 file (梅山)권화현6 2014.02.07 14372
71 30주년 행사에 외부인사 축사 권화현 2007.11.18 2262
70 술꾼 1&2 조성원 2007.11.13 2850
69 [re] 술꾼 1&2 박찬호 2007.11.16 2706
68 반갑다 2 박태민 2007.11.11 1819
67 [10일자 ‘조선일보’ 기사 둘] 배재철 2007.11.10 1981
66 김 정규소식.. 1 권화현 2007.11.07 2016
65 산에서 "야~호~" 하면 안되요. ( 펌 글 ) 1 이덕용 2007.11.02 1715
64 야.가슴뛴다.마음은 아직도 청춘이다야... 1 박범 2007.11.01 2100
» 사당동 전철행 조성원 2007.10.31 2691
62 짜장면 조성원 2007.10.25 2379
61 봉암사 선방 조성원 2007.10.25 2123
60 늦가을의 독주 조성원 2007.10.17 2776
59 3학년7반 장호재 1 장호재 2007.10.17 2277
58 가을 단풍 6 조성원 2007.10.15 2532
57 세계 최고의 철강인 [朴泰俊] 이대환 현암사 2004 배재철 2007.10.05 226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Next
/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