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6 14:49

주말 농장

조회 수 1950 추천 수 0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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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같은 일을 하는 대학후배와 생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후배가 주말에는 밭일을 한다는 말을 듣고, 취중에 나도 해보겠노라고 약속을 해버렸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주말 농장.

 

다음날 농장주의 통장에 년간 사용료로 12만원을 송금하고, 약 15평의 땅을 임대받았다.

주말 농장으로 15평은 꽤 넓은 땅이라는 것은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이틀에 걸쳐 그 넓은(?) 밭을 갈고 거름을 사다 듬뿍 뿌리고, 상추, 고추, 오이, 쑥갓, 가지, 얼갈이, 열무, 고무마 등등을 심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에게 현장체험을 시켜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주말마다 가서 밭일을 한다는게 생각보다 쉽지를 않았다.

상암동에서 부천까지의 거리도 만만찮았고.

아마 경험 많은 후배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수확한 오이를 소매에 쓱쓱 문질러 바로 그 자리에서 먹던 감동은 잊지를 못한다.

또 벌레 먹어 구멍이 숭숭난 얼갈이와 열무로 김치를 담가 식탁에 올렸을때의 그 기분도.

 

우리 집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하나 한번 지켜보겠다."라고 비웃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비웃음은 쏙 들어가버렸다.

지난 여름 우리집 밥상에는 푸성귀가 끊어지지를 않았다.

덕분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삼겹살도 많이 구워 먹었고, 부추전도 몇 번 부쳐먹을 수 있었다.

 

계속되는 비로 고추가 탄저병에 걸려 몽땅 뽑아버릴때는 속이 다 쓰렸다.

농부들의 마음도 비로소 이해가 될 것도 같았고.

 

지난 개천절날은 그동안 학수고대하던 고구마를 캤다.

아들은 신이 나 밭고랑 사이를 뛰어다니고, 집사람은 한 켠에서 고무마순을 다듬고.

쌀푸대에 아들 머리통 반만한 고구마를 가득 담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네, 사무실 직원들, 집사람 친구에게 조금씩 나눠주다 보니, 벌써 반으로 줄어 들었지만 아직도 마음이 뿌듯하다.

 

옆 사람이 포기한 밭을 인수받아  심어놓은 배추가 100포기가 자라고 있고, 무우가 그득하다.

다음주에는 그 배추를 묶으러 가야 한다.

올해는 아마 난생 처음으로 내가 재배한 배추로 김장김치를 담굴 수 있으리라.

 

하지만 솔솔한 이런 재미보다 더 큰 수확은 우리 집사람이 나중에 시골가서 살자는 거다.

아들이 어리다보니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꼭 그러고 싶다.

그때를 대비해서 농사일을 더욱 열심히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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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용 2008.10.06 15:45
    행복한 모습~. 나중에 나 은퇴하고 한국 가면 한 수 가르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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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복 2008.10.06 20:04
    이 글도 자네의 김치와 관련된 글을 보다 생각해 낸 것이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농사라는 것도 정성이라고 생각되네. 집 앞 마당에 씨앗뿌려 놓고 물만 주면 될텐데. 미국은 땅이 비옥하니. 일주일에 한번씩 가면 가지가 땅에 떨어져 썩고 있는 것을 여러번 봤지. 집앞이라면 저녁마다 따서 밥상에 올릴 수 있었을텐데. 아쉽지.
  • profile
    권화현 2008.10.06 22:05
    난 한해 배나무 1그루 분양 받아 손질 해 보았는데....게으름에 수확이 좋지는 않았지만...그 맛은 끝내 주었는데......축하 하네 농군 입문....!!
  • ?
    류태용 2008.10.07 09:35
    기복이 그심정 시골 출신이면 다안다.조금하니까 괜찮지 많이 해봐라 허리,다리 무릎...안아픈데가 없다.그러면서 살아오신 부모님을 늘 생각한다.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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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삼(말xx) 2008.10.07 10:19
    기복이는 참 째째하게(?)변한것 같아. 보기 좋네.옛날에는 만주벌판에서 말달리고 압록강에서 양치질하던 친구가 늦장가가 무서운거야. ㅋㅋㅋ 보기 겁나게 좋구만 한번 보자.진수랑해서
  • ?
    정상희 2008.10.07 23:49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까한다! 나도 3년전부터 농사를 하지만, 처음에는 양팡 인대도 다치고 모습도 낯설고.. 하지만, 땅과 호흡하면서 산다는 것, 그 자체는 궁극적인 길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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