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by 조성원 posted Dec 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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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1월을 희망, 3월을 푸르른 날개라 한다면 유월은 내게 있어 나른한 몸체가 비로소 스스로를 거부하기 시작하는 권태이다. 그런 내가 한 해의 이루지 못할 또 하나의 파산을 짐작하는 때는 9월쯤이 아닐까. 어쩌지 못할 발그레한 꼬릴 거뭇한 숲에 던지고 마는 낙조, 바로 그 9월.

 

그쯤에 황홀은 어둠과 상통하여 은밀히 타락한다. 그리 살다 말 것이란 강한 의혹 그리고 체념은 찬 서리처럼 이내 닥친다. 내게 12월은 무엇일까. 한 해를 들먹일 필요 없이 단 하루도 내게는 그와 유사하다. 저녁 때 쯤 이면 타락하고 싶다. 추락하여 더는 어쩌지 못할 위인이 갖는 체념과 구실.

 

낙막한 그믐 같이 전락한다. 전락하여 추락하는 것은 정녕 황량한 벌판이다. 전락. 다들 전락하지 않으려 한다, 월장을 바라고 3월의 파랑새 꿈을 꾼다. 밑돈을 들이고 줄을 대고 말을 앞세워서라도 훠이훠이 날고 싶다. 하지만 이내 전락하고 만다. 꽃이 그렇고 만물 자연이 다 그러하다.

 

전락은 패배를 의식하게 한다.  무너지고 진멸하여 진공으로 함몰할 것도 같다. 12월에 난 꼭 그렇게 패배하고 절망한다. 전락은 다급하고 들썽하여 진한 서글픔도 따라 안긴다. 진실 또한 전락의 한 문제이다. 전락은 그러기에 진한 안타까움이 있다.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의 엷은 시간처럼.

 

12월, 한 해가 저물기 전 그들을 만나야 하고 그곳에 서는 필연은 전락 때문이기도 하다. 명품은 귀하다는 존재 말고도 전락하지 않는다는 상징으로서 더한 가치가 있다. 세상은 전락되지 않으려 애쓰는 과정들로 수두룩하다. 이 달 잊고 지우고 새기자 함은 전락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12월엔 삶이 예사롭지 않다. 전락한 기구함을 잘 알게도 되는 노릇이다. 그런 12월엔 여느 때보다 유난히 달력을 더 들여다본다. 내가 유독 끝 계절에 글에 애착을 갖는 것 또한 전락하지 않으려는 한 방편이다. 난 솔직히 전락할 것을 두려워한다.

 

전락이 두려워 전락하고 있다고 부러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는  무너지고 닳아져  12월이 더 형편없는 품행이다. 전락하여 하루를 넘기는 가년스런 모습. 아무리해도 전락은 눈물 나게 하는 슬픔이 있다.

 

하여 아주 포기할 것이던가. 전락할 것을 늘 갖고 살고 있기라도 한 것인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신기하다. 전락하는 마음속엔 끊임없는 반란이 있다. 전락은 추락과 몰락을 말하지만 이질이 동질화되는 재질도 있다.

 

전락은 전제한 의식을 몰아내는 힘이 있다. 몰락은 다른 의식을 낳는다. 헛된 가치를 일깨우는 자각의 시초도 된다. 전락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전락이 있어서 정녕 전락해서는 안 될 것이 따로 깊숙이 존재하기도 하는 셈이다. 그러한 12월은 자성의 시간이다.

 

하지만 이 세상 전락은 표출에 급급하다. 마치 12월의 들뜬 나날처럼. 12월은 잊자하면서 잊지 못할 외형을 더욱 많이 만들고 기념한다. 이세상은 새로워지기 위하여 전락을 늘 낳고 꿈꾼다 해두면 어떨까. 전락은 12월 같은 어쩔 수 없는 몰락이며 또한 삶의 새 가치이다.

 

저문 어두운 그림자라 하지만 명년은 변하여 새로워진다면 마냥 두렵지만은 않은 12월이기도 하리라... 전락하여 한 해 길어진 꼬리를 오늘 유심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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