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31 12:31

삽질 ( 나 어릴적 67)

조회 수 3200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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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



  

실과 시간에  삽과 괭이를 들고 나섰었다. 땅을 파면 파편이 즐비하게 나왔다. 음침하여 학교 본관을 향하는 총싸움이 치열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그런 장소이다.  그때 심은 작은 나무들이 이제는 큰 숲을 이룬다.  어린 손길에 작은 삽질이 큰 결과를 낳은 셈이다. 무럭무럭 자라나  새나라 일꾼이 되는 것과도 같이  교육은 바로 그러한  진면목이 있다.


큰일을 도모하는 첫 시작을 말하는 때 ‘첫 삽을 뜨다.’ 란 표현을 쓰곤 하는데 바로 그러한 심중이 깔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한 산뜻한 표현이 있지만 삽질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일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허리를 유연하게 잘 써야한다는데 나는 그 기술을 터득하지 못했다. 일을 할 때 나는 괭이를  잡곤 했다. 고르는 일이 훨씬 덜 힘들었다.


예전에는 농기구가 참 많았다. 사람이나 소가 일일이 일을 해야 했으니 많을밖에. 논밭을 가는 기구에서 씨를 뿌리고, 김매고, 거름내고, 거두고, 고르고, 말리고, 갈무리하는 연장이 다 필요했다. 요즘 고작 스무 평도 채 안 되는 밭을 힘 꽤나 들여  가꾸며 느끼는 것이 그 시절의  힘겨움이다. 삽질로 그 큰 밭을 어찌 다 일구었던가 싶다.  부모님은 틈만 나면 텃밭에 나가 일을 했고 주말에는 아예 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우리 동네는 한때 삽 하나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른 새벽 장화를 준비하고 신작로에 오르면 큰 트럭 한 대가 기다린다. 그 중에는 지난해까지 마부였던 사람도 번데기를 파는 아저씨도 벌터에서 소작을 했다는 사람도 끼어 있다.  웬만해선 그 무리에 끼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돈벌이가 괜찮은 만큼 서열도 있고 끼려는 사람들도 줄을 대야 했다.


나는 그들이 하는 일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야말로 삽질에 도가 튼 사람들이다. 시멘트 포대를 한 손에 딱 잡으면 옆으로 부지직하고 실밥이 튕겨져 나갔고 큰 철판위에 마치 비빔밥을 만들듯 금세 물과 모래가 뒤섞인다. 물이 철렁되며  넘쳐날듯 한데도  전혀 그런 일 없이 갈무리 하듯 골고루 잘 섞인다. 이제부터는 굳기 전에 부리나케 삽질을 해야 한다.물 타기를 해서 시멘트 양을 줄인다고 주인들은 꼭꼭 챙겨 보던 그 시절.


질통을 멘  사람은 연실 퍼 나르고 삽질 하는 사람은 구령에 맞춰 삽질을 한다. 일명  공구리패라 하여 스무 명이 한 패가 되어 동네 신축현장은 그들이 불려 다녔다.  그 광경을 보면 자연스럽고 전혀 힘이 안 들어 보이는데 아무나 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숙달이 되고 요령을 잘 아는 그들만이 가능한 그런 삽질이었다.  새벽부터 두 시간 남짓  뚝딱 한 일을 해치우고서는 그들은 준비된 트럭에 또 오른다. 하루에 그렇게 세 번은 해야 돈벌이가 된다고 했다.


그들을 기억하자면  뻔! 뻔! 외장치며 번데기를 동네방네 팔고 다니던 아저씨가 나는 꼭  떠오른다. 그중에서 제일 가냘팠기 때문이다. 욕을 질펀하게 하던 오야지란 사람한테 혼나는 것을 보고서는 더욱 안타까웠다. 신문지 둘둘 마른 번데기 봉지나 들고 동네나 돌 것이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그 삽질의 통증을 가슴으로 담은 것은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다. 아저씨는  일은 안 나가고 양지녘에 쪼그리고 앉아 우리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난 그 삽질에 꼭 맞는 시 하나를 알고 있다.


 

저문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중에서 -


 

삽질은 모든 육체노동을 대변한다. 노동은 사람이 세상에 참여하는 거룩한 방식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정직한 노동의 가치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치가 떨어져서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부당하게 취급도 당한다.  저문 강에 선 하루의 저녁은 인생의 노을과 같아서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는 자조와 탄식 그리고 생의 달관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삽자루에 맡긴' 묵묵한 노동의 성실함을 누가 제대로 알아주랴.


저문 강은 피곤했던 하루를 씻어줄 뿐 아니라 의연한 깊이를 보여주어 세상살이에 지친 이에게 위안을 준다. 요즘은 공구리 패란 패거리는 없다. 아예 그러한 삽질도 없어지고 말았다. 대신에 레미콘이라는 괴물이 그 일을 한다. 기껏 우리가 삽질을 한다는 것이  어쩌다 땅 두세 치 파고 작물을 심는 일이다. 그러기에 요즘은 ‘삽질을 하다.’ 하면 괜한 일을 득도 없이 힘들게 했다고 할 때 비어로 그 말을 쓴다. 하지만 삽질은 여전히 사람이 세상에 참여하는 거룩한 방식중 하나이다.


'삽'이라는 한 글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삽질은 자신의 몸을 구부리고 낮춰야 하는 일이다. 한 삽에 한 삽을 더해야 하는 묵묵하고 막막한 일이다. 흙 한 삽, 모래 한 삽, 시멘트 한 삽이 모여야 밥이 되고 집이 되고 길이 되고 마을이 되고 무덤이 된다. 삽질은 그 우직함과  정직함에 있다. 파고 푸고 옮기고 덮고 매만지듯 차곡차곡 하는 일이 비단 땅을 다루는 삽질만인가. 늘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은  삽질과도 같다.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울 것도 없이 어느 참 우리는 몸을 낮추고 허리 춤 힘까지 아낌없이 다 소비하는 용감한 일꾼이 되었다. 이른 아침이면 으레 눈이 떠지고  삽을 들고 구부리고 일터로 향한다.  누구는 곤곤하다 할지 모르지만 일터가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삽을 들고 걷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뿌듯하다. 그러기에 비록 삽자루에 맡긴 생애가 저물고 저물어 썩는다 할지라도 의연히 우리는 삽자루를 들고 나서 볼 것이다.  가족을 위한  것이라면  그 시절과 다름없이  사는 날 다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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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성기현 2011.12.31 13:04

    성원아 기현이야 정말 반갑다 오랜기간동안 못봤는데 언제 얼굴 보여줄거야?

  • ?
    조성원 2012.01.01 10:57

    반갑다. 시왕이한테 소식 들었다. 잘 지내지. 여주에 있다던가 집은 여전히 계룡시라고 들었는데 대전에 오면 연락해라. 이광석이하고 집도 바로 이웃 동에 같이 살고 우왕돈이는 대덕테크노밸리 우리동네 입주해 사업한다. 댓글도 고맙고 너는 우리의 영원한 장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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