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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배 수녀님께서 계셨던, 대전의 샘골공부방에 다녀온 후기 입니다.]


참 밝았습니다. 예의도 바르고...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왔습니다.

2월 13일(월), 경남 진주의 새 임지로 발령나신 시모나 수녀님의 휴무일에 맞춰서

인천에서 제가 있는 마장동 처남댁으로 온, 양아녜스와 함께 대전의 샘골 공부방에 찾아갔습니다.

대전시내 한 복판, 목동 지역의 산동네...

한국전쟁시절부터 형성되었다는 50년 넘은 산동네 판자촌...

바로 길 건너에는, 넉넉한 형편의 고층아파트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습니다.

산동네의 저소득층, 맞벌이, 그리고 결손 가정의 아이들을 모아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에서 희망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대전 샘골 공부방에 도착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아직 오기 전이어서 시모나 수녀님과 사라수녀님(장애 어린이를 돌보기 위새 새로 부임),

그리고 아녜스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아이들이 사는 곳을 둘러 보았습니다.



꼬불 꼬불 산동네의 가난한 판자촌,

골목을 지나면서 시모나 수녀님이 설명을 해 주십니다.

여기는 OO네, 여기는 XX네, 여기는 가정 형편이 이렇구...

저도 청계천 변의 판자촌에서 태어났고, 출생 후 2일후에 집이 헐려서 미아리 공동묘지로..

그리고 다시 신당동으로 판자집을 전전하면서 성장해 왔지만,

이곳의 집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정도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제가 살았던 저희집은 부모님과 4남매가 가게에 딸린 온돌방에서

서로 머리를 반대 벽으로 하고, 서로의 다리를 얼굴에 겹치면서 잠을 청했었습니다.

그랬던 저희 집이 이곳에 비하면 마치 궁궐이었던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문앞에 낙엽과 쓰레기가 가득한 채, 폐가로 방치 된 집이 보이기에,

'여기는 사람이 안 사네요' 라고 묻자 수녀님 말씀이 집 주인이 약사랍니다.

소위 말하는 딱지로 돈을 벌기 위해 집만 사놓고,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그런 집이지요.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도시에서 일용직이나, 다른 잡일을 하면서 생활을 영위해 갑니다.

재개발이 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

이곳에 사는 이들은 모두 어디론가로 쫓겨 가게 될 것입니다.

농토가 있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겠지만, 땅도 돈도 없는 이 네들은,

다시금 도시로 들어와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재개발 계획에는 가난한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모습이 볼썽 사나우니,

도시 미관상 없어져 주었으면 하는 불편함으로 생각들 하는 것 같습니다.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조금만 사랑을 나누어 주면서 같이 살 수는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이 하나 둘 학교 수업을 마치고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다 오게 되면, 42명이나 됩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먼저 오고, 잠시 후 중,고교생 아이들이 밝은 표정으로 들어 옵니다.

공부방의 가구, 집기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우리들의 사랑스런 후배인 시모나 수녀님이

손수레를 끌고 쓰레기와 폐품중 쓸만한 것을 주으러 가면,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이 못 들어 가게 하신답니다.

수도복의 수녀님이 손수레를 끌고 갔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심정을 서로 이해하실 수 있는 경비 아저씨였겠지만,

아파트 주민들의 월급을 받는 처지에서 규칙대로 하실 수 밖에 없었겠지요.

'수녀님 복장으로 손수레를 끄는데도 못들어가게 해요?'

많이 힘드셨겠다고 위로하니,

수녀님은 가볍게 웃으며 '다들 그러는데요, 뭐.'하면서 편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라 수녀님이 쓰실 장애아이들을 위한 2층 방에 들여 놓을 헌 책장과 소파를

공부방 중,고교 아이들과 함께 층계를 오르 내리며 나르고 난 후

한 쪽 종이 상자에 모아 놓은, 아이들이 2004년에 써놓은 학습 파일을 펼쳐 보았습니다.

한 아이의 파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나이는 제 짐작으로 초등학교 5,6학년으로 보였습니다.)

  "친구란 : 친구란 맞아 달라고 할 때, 맞아 줄 수 있는 놈.

   하기 싫은 일 : 학교 가기, 숙제하기, 산수 공부

   하고 싶은 일 : 게임하기, 길에서 돈 줍기

   장래에 하고 싶은 일 : 돈 많이 벌어서 일본에 집 사 놓기, 일본으로 국적 바꾸기"



아이의 일기 비슷한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었습니다.

" 아그들이 나를 빼고 자기들끼리 저쪽에서 수군댄다.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 같다. 내가 먼저 죽여 버릴까"

이 아이의 그림에는 온통 흉터 가득한 사람얼굴...그리고 똥을 그려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지금은 밝게, 그리고 마음도 건강하게 공부방에 다니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어머니가 가출한 상태에서 집을 나가 밖에서 전전하는 아버지가

2주일에 한번 정도 와서 500원을 주고 간다고 합니다.

아이들 대부분은 학교에서 주는 무료 급식외에는

밥을 먹을 수 있는 형편이 못 되구요. 사흘을 굶은 아이도 있었답니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뉴스가 생각납니다.

육이오를 체험하자고 주먹밥을 먹어 보는 행사...

그리고 때로는 배고픔을 체험한다고 단식을 해 보는 일회성 이벤트...

먹을 기약이 없어서 굶고 있는 아이들의 굶주리는 고통 앞에서

한, 두끼 굶고 난 후에는 먹을 기약이 있는 사람이 해 보는 배고픔의 사치스런 체험.....

처음 아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했을 때, 폭식을 했었답니다.

목구멍이 차 오도록 음식을 꾸역 꾸역 먹어대는 아이들의 가슴 한 켠에는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아닌,

먹을 기약이 없는 저녁, 그리고 다음 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겠지요.



제가 자라던 시절은 그래도 소외감은 덜 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봉지쌀을 사서, 콩나물 죽을 먹으면 이웃들도 그랬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게는 빚으로나마 고등학교까지는 마치게 해 주신 고마운 부모님이 계셨구요.

인근의 아파트 아이들이 갖고 노는 십수만원대의 장난감과 게임기..

그리고 먹다가 버리는 음식들을 바로 길 하나 건너편에서 보면서

배가 고파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의 소외감은 얼마나 클런지요.

길 거리 붕어빵 장사 앞에서 호주머니 속의 50원 100원짜리 동전을 만지작 거리면서

마른 군침을 흘리는 아이들. (붕어빵 4개에 천원입니다).



어른들이 힘들게 또는 술주정으로..그렇게 산다면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만, 스스로의 삶에 대해 절반 정도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이 처한 환경은 아이들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에게 작지만 따뜻한 사랑으로 도움을 준다면

아이들은 지금의 밝은 웃음을 공부방에서 계속 배우면서 어른이 되어 갈 것입니다.



간식 후에 수녀님이 쮸쮸바를 사 오셨습니다.

일찍 온 아이들 모두 맛있게 먹은 뒤, 한 초등학교 남자 아이가 늦게 들어왔습니다.

늦게 온 아이의 몫은 없었고,

다른 아이들이 '그러게 조금 일찍 오지 그랬어'라고 이야기 하자

아이는 풀이 죽은 표정입니다.

'붕어빵 먹을래?'하고 묻자, 고개를 끄덕입니다.

'붕어빵 먹을 사람?', 조금 전에 간식을 맛있게 먹었던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듭니다.

길거리로 나가서 붕어빵을 사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시도록 부탁드리고,

준비해 간 작은 정성을 공부방에 쓰시라고 전해드렸습니다.

새 임지로 가신 지 일주일 뿐이 되지 않아 낯선 진주에

시모나 수녀님을 밤길에 혼자 보내드릴 수 없어서 아녜스에게는 버스를 타고 올라가라고 하고

무면허(미국면허만 있어요) 운전으로 진주까지 수녀님을 모셔 드리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의 밝은 모습과 수녀님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보고 돌아 오는 길...

마음 아픔도 한 편에 있었지만, 그 보다는 희망과 행복을 더 많이 느끼고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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