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6 20:14

안개꽃

조회 수 2874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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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꽃. 나는 그 수수한 꽃이 마음에 든다. 결코 부유해보이지 않으면서도 얕잡아보지 못할 깔끔한 꽃이다. 달리아처럼 요란하지 않고 칸나처럼 강렬하지 않아 한가운데 자리한 성미 급한 장미가 토라질 것도 없이 늘 그 언저리에서 차분한 숨결의 속삭임이 고운 미소다. 그러기에 안개꽃은 다 피어도 되바라진 데가 없는 단아하고 오긋한 모습으로 늘 정갈하며 일목요연하다.

 

 

 

 

어느 태생인지 모르나 수수한 생김으로나 촘촘히 수를 놓듯 가지런한 다소곳함은 동양적이고 특히 한국의 여성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 혼자로는 살 여력이 없다 느껴져서일까. 들녘에서도 화병에서도 잔뜩 몰려들어 스스로에게 기대어서는 하얀 색채의 배경이 되기를 자처 한다. 그런 그들의 합창은 초가을 풀벌레 소리이고 하얀 눈이 소리 없이 펄펄 내리는 포근한 자태이며 안개 자욱한 새벽길을 잠잠히 적시는 새하얀 이슬비다. 파리하게 솟은 꽃대궁이 하나로는 감당이 안서서 숲 마냥 여럿을 모아도 모습은 여전히 애잔하여 마음을 실없이 망연하게 한다. 그러기에 어느 이름 모를 무덤에 놓아진 안개꽃을 보노라면 괜스레 슬픔이 더해진다. 그쯤에 하얀 색채는 정녕 말 못할 아픔을 지닌 슬픈 미소이다. 화사한 꽃과 더불어 꽃병에 놓일 때는 말쑥하게 양장을 차려 입은 여인 같더니만 들녘 후미진 곳에서 바람결에 하늘거릴 때는 청초한 슬픔이 되고 마는 것이다.

 

채워지는 것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이를 아쉬움과 체념을 넘어선 고귀한 가치의 전용이라 하면 어떨까. 청초함과 고상함을 지닌 원형의 것이란 무릇 놓인 곳에 따라 이러하듯 색감과 느낌을 달리하지만 자아내는 미소는 어디에서든 곱고 여리다.

 

그렇다고 안개꽃은 원형의 고귀함으로서 결코 화사한 주역이 되고자 하지는 않는다. 소담하면서도 정갈 한 것이 본형의 원처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안개꽃을 무척 좋아한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한 무리를 시시때때 가져와서는 그 다발이 시들시들 하여 이제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면 어떨까 싶은 때까지도 안개 꽃 다발을 송두리째 줄에 매달아 둔다. 안개꽃은 평소 향기로운 여느 꽃과는 달리 여릿한 향내가 거의 코끝에 닿을 듯 말듯 그 냄새를 맡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묘하게도 안개꽃은 그쯤에 그러니까 자기의 모습이 다하였다 싶은 때쯤부터 향기가 진하여 그 맡아선 향기가 오랫동안 간다. 총총히 모여서도 수다스럽지 아니한 채 조용히 지내다가 허접해질 무렵 그 느낌을 전하고 스러지는 것이다. 도드라져 나서지 않으면서도 은은히 전하는 데에 소홀함이 없는 기품은 끝끝내 내 마음을 놓지 않는다.

 

이러한 배경으로서 살다 가기가 어디 쉬운 노릇일까. 아니 삶의 가치 그 소중함으로서 생의 뒷자리를 말없이 채우듯 변함없이 애틋하게 살다가는 안개꽃의 잔잔한 품성이 화사한 꽃 보다 더 아름답다.

 

 오늘 책상위에 놓인 안개꽃 그 차분한 숨결의 속삭임이 어느 참 가슴속에 파고들어 한층 고운 미소를 내보이고 있다.

 

나는 새삼 안개꽃 같은 배경으로서의 내 모습을 본다. 어느 것의 배경이 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안개꽃.

 

솔직히 나는 지금껏 내가 배경이 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용납이 안 되었을 것이라는 표현이 맞을 성 싶다. 나는 어디서고 주인공이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문득 얼마나 많은 것 무수한 생이 나를 위해 봉사를 해주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가정에서조차 주인공으로 군림해 아내와 아이들조차 나를 받드는 배경이었다.

 

내가 배경이 된다면 어느 모습이 좋을까 . 캄캄한 밤하늘이 있어 별은 더욱 반짝이고 동구 밖을 지키는 큰 느티나무는 외롭지만 그로 고향마을을 더욱 정이 서리게 한다.

 

하지만 나는 큰 뜻을 이루거나 희생정신이 투철한 거창한 배경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겐 알록달록 모양도 예쁘고 소소한 것이 아마 제격일 것이다. 조약돌을 품은 숨죽인 냇물 같은, 그래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작은 배경이 되리라.

 

한 가정에 배경이 되는 자상한 아버지, 그로 내 아내와 아이들이 행복하다면 나는 더없는 안개꽃일 것이다. 나의 든든한 배경은 바로 이 안개꽃이다. 나 역시도 수수한 안개꽃이려니... 하지만 그러기에는 비울 것이 여직 나는 너무도 많다.

  • profile
    권화현6 2012.01.17 10:17

    배경같은  안개꽃도,

    알록달록 도드라진 꽃도 아닌

    많은 잡초 중에 하나라도 다 의미 있는 것(?)

    모두 주인공인 연극은 없고

    모두 조연인 연극 또한 없으니

    삶이란 타이밍의 예술....

    날 자리와 들 자리를 잘 찾는 지헤가 필요한것 아닐까(?)

    이제 전쟁터를 거쳐 조용한 휴식이 더 필요한 시간이라면

    너무 이른 게으름일까(?)

    성원이의 안개꽃 한 다발에서 삶을 돌아보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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