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26 23:29

한 통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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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낄낄 거리며 한 통속

 

사람이 살다보면 밥만 먹고 앞만 쳐다보고 살 수 만은 없다. 때론 시궁창에 빠지기도 하고 뒷문으로 몰래 야금야금 기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몰풍스런 구석을 안 들여다 볼 수 없고 게걸스런 표정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들 인생이다.

 

민연한 것들이 사는 찝찔한 맛의 한가운데 나 역시 서있는 것 부인 못한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앞이 아니라 옆 뒤에 보다 즐비하게 널려 유혹하는 많은 것들을 잘 섭렵하고 잘 다루는 차이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유혹은 늘 자극을 동반한다. 자고로 자극에 초연한 사람들이 두고두고 이름을 남겼다는데 나 같은 속물은 자극에 결코 둔하지 않다. 한 때 우리 동네에 예쁘다 싶은 젊은 처자가 카페 문을 연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많지 않았던 객들이었는데 한 달 쯤 되니 풍류를 안다는 옷깃 세운 동네아저씨들은 다 몰려온 꼴이 되고 말았다.

 

맥주에 오징어 다리 시켜놓고 애꿎은 줄담배 문 사내들이 방마다 그득했다. 대뜸 알아본 것이 이러다가 조만간 시비가 붙을 것이란 것이었다. 말라비틀어진 노가리순정 따윈 왜들 거들먹대는지 모를 일이다. 술장사로는 프로 격인 유성은 아마도 술집에 맡겨 둔 순정이 두 트럭은 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친구가 생기고 말았다. 나는 목격자의 신분으로 강제적으로 파출소에 끌려갔다. 실은 나도 목격자 성분은 훨씬 넘는데 말이다. "저 친구가 큰 소리로 마담을 불렀는데 안 와서 시비가 붙은 것입니다." 말은 그러했지만 ‘불타는 욕정이 죄입니다.’ 란 말이 더 진실에 가깝다.

 

"저는 조용히 앉아서 맥주만 마셨을 뿐입니다." 라 했지만 이 또한 허울에 불과한 말이다. 근자에 책을 가까이는 하지만 내키지 않을 때가 많다. 고상한 글에 주눅이 든 것인지 태생이 속물이라 어쩔 수 없는지 구질구질한 날엔 진부하기 이를 데 없다.

 

속물의 발막한 근성이다. 속성이 죄악에 가까운 것인지 은밀하고 컴컴한 구석들을 잘도 알고 파고든다. 참 묘하다 싶은 게 유익하고 선한 것들은 물들기가 쉽지 않은데 눅눅하고 꾀죄죄한 부류의 근성은 물들이기가 쉽고 퍼지기도 잘 퍼진다. 한통속이란 것이 이럴 때 아주 제격인 표현이 아닐까 싶다. 한통속이란 같이 물들여지는 것이다.

 

동네 마당 쓰는 것은 어려워도 험담이나 화투짝 나누는 건 쉽다. 남자들만 모여 웅성대는 곳을 가보면 제일 인기 높은 과목이 음담패설이다. 난장판이 조용해지다가 일시에 웃음바다가 된다. 이럴 때 '낄낄댄다' 라고 표현을 하는데 누가 지었는지 잘 지은 말이다.

 

분명 낄낄은 음흉의 색깔이다. 재담꾼은 그런 말은 늘 주머니에 달고 다닌다. 난 그런 말을 주어 담는 능력에서 현저히 뒤쳐진다. 술이나 퍼마시다가 우정을 나눈답시고 대보지 마주보지 털어보지 하며 건배나 외칠까 그런 주변머리는 없고 낄낄거리며 웃는 한통속에 불과한 숙맥이라 할 것이다.

 

2. 으스대며 한 통속

 

평소 속물 사내들은 주먹을 동경한다. 나도 예외는 아닌 터 작은 주먹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가끔 꿈속에서 적을 무찌르고 그때 단꿈을 꾸었다 느끼는 것을 보면 이 말은 확실하다. 저걸 그냥 하며 주먹을 쥐는 사내들을 보면 ‘저 자식 저러다 일내겠네.’ 하며 그 자리에선 경멸하지만 실제로는 꽤 부럽다.

 


이는 내 탓 이라기 보단 세상이 법만 가지고는 태부족인 현실도 큰 몫 하는 거다. 내가 자주 가는 유성의 목욕탕은 짬뽕 그릇에 그려진 용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소위 말하는 조폭들이 저녁 무렵 무더기로 찾아들 온다. 다 벗은 상태에선 잘 몰라볼까 봐 그려둔 것 같은 생각도 드는 녀석들은 생각 외로 공손하다.

 

“형님! 안녕하시지유. ” 듣기 따라선 이 말이 그렇게 따스하고 든든할 수 없다. 그들 말대로 관할 구역만 무사하다면 시비가 있을 리 없고 공존과 평화를 누구보다 원한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아무튼 그들 출근 시간 때 내 퇴근시간과 교차하며 자주 만난다.

 

10년 넘게 곳을 들락거리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연 말을 트고 지내는 친구가 하나 생겼다. 동네에선 손을 꼽는 친구인데 내게 꼬박꼬박 형님이란 칭호를 부쳐주니 난 그곳에선 자연 큰 형님이 된 셈이었다. 한번은 그 친구보다 한 끗발 위인 동네 대표 두목이 사우나에 나타났었다.

 

사우나탕 문 앞에 보초를 둘이나 세운 두목이 들어서자 안에 상주한 한패가 동시에 모두 기립을 했다. 동생이란 놈이 바짝 긴장을 하기에 나도 얼떨결에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왜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도목은 좌중을 살피더니 아무래도 내가 수상했던 모양이다. 바로 그때  나이트 클럽 동생  녀석이 어색함을 알아차렸는지 재빨리 말을 했다.

 

“이 형님은 연구단지에 계시고 시인이신데 저랑 안면을 트고 지냅니다.” 그러자 두목이 폼 나게 일어났다. 다들 또 그 순간 모두 기립을 하더니 그의 다음 동작을 기다리며 손을 조아렸다. 나도 어쩌나 싶었다. 그가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하기에 누군가 했습니다. 시인인 줄 몰라봤습니다. ” 하니 조폭들이 모두들 나를 우러러보듯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사우나탕을 빠져 나올 때 그들 모두가 나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이후 나를 알아보는 조폭들이 많이 늘어났다. 나이트 클럽 동생 덕이지만 곳에서만은 내 우쭐함은 지금도 하늘을 찌른다. 일부러 동생 녀석 오는 시간 맞춰 나도 행차다. 요즘 젊은 놈들은 덩치는 커가지고 버릇이 꽤 없다. 말도 막하고 침도 아무데나 뱉고 땀 흘린 몸으로 씻지도 않은 채 냉탕으로 바로 들어가는 놈들도 많고 몰상식하다 싶은 녀석들이 한 둘이 아니다.

 

법만으로는 도저히 처리 안 될 일들이 많기도 한 셈이다. 그런 때 돈키호테처럼 당당히 나서는 이가 바로 나다. “ 사우나는 공동으로 쓰는 곳이니 침은 아무데나 뱉지 마시오. ” 하는 내 말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녀석들은 하나도 없다. 왜소한 체구를 몰라볼 위인들이 아니다. 그러면 더 한 번 강한 어조의 말을 할 수 밖에는 없다. 자칫하면 체면만 구긴 꼴이 될 터이니.

 

그쯤 동생이 나선다. “형님! 애송이들한테 뭐 신경을 쓰세요. ” 하며 “야들아 어른 말 들어라.” 한다. 그 말에는 바깥에서 쓰던 말“ 조용히 말할 때” 란 말이 생략된 것이다. 그쯤 그의 팔뚝에 그려진 독수리를 본 젊은 아이들은 바로 문을 열고 줄행랑이다. 그럴 때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다. 꿈에서나 나올 광경이 바로 눈앞에 벌어지니 속물인 나로서는 그쯤엔 文이 武보다 못하다는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사우나는 내가 접수했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버릇이 생기고 만 것도 같다. 이러다가 큰 꼴 당하기 십상이지 싶다. 내가 주먹돌이라 한다면 막 나가는 허세 폼을 보아 명대로 살기는 애초에 틀렸을 것이란 생각도 들고 아무리 글을 정갈하게 써봐야 속물근성은 절대 근절이 안 된다는 뼈아픈 추론도 따라 붙는다. 결국 오늘도 나는 위태로운 기고만장을 등에 업고 으스대며 그들과 한 통속인 양  아지트로 향한다. 그러면서 하는 소리다. "까불고들 있어."


  • profile
    조성원10 2012.01.27 10:22

    글이 조금 길었지요.  ㅎㅎ 웃자고 그냥 올려봤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들. 대전에 찬호가 왔군. 반가우이.

  • profile
    권화현6 2012.01.28 10:45

    ㅍㅎㅎㅎㅎ

    완전 그림이 그려지는 상황인데...

    근엄한 법은 저 멀리있고

    가부를 가리는 武는 그 뜻과 같이 굳세게 가까이 있다....

    내가 젤 부러워 하면 동경하는 그 "무"

    그 놈도 이제 무다리 만큼 쓸모 없을 세상을 꿈꾸어 본다.

    물론 꿈이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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