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25 09:31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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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정취는 단지 맛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어쩌면 맛은 그대로인데 우리들 입맛이 멋따라 변하였거나 그 맛을 보는 입장이 제멋대로 달라져 그러할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 그 시절 짜장면은 느낌만으로도 여전히 고소하다. 한 끼 대용이 아닌 뜻있는 날이나 대접을 하는 때 가치 있는 대상으로서 당당히 존재한 짜장면이다. 그윽한 품위는 아니라하여도 일회용 한 끼 후딱 해치우는 대상은 정녕 아니었다.  


기대 하여도 좋았던 느낌의 대상은 친근감과 향수를 언제든 불러일으킨다. 지금도 바람 불어 좋은 날 어느 이름 모를 동네 어귀를 어슬렁어슬렁 걷노라면 예전처럼 훈훈한 후각 넘치는 그곳을 지나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방의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뿌듯한 느낌마저 들게 되는 것은 그것의 친근함 덕분이다. 굳이 길을 묻거나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그곳이 똑 같이 사는 사람 사는 동네 한복판이다.  


목젖이 연실 열리고 꼬르륵 배가 합창을 하면 어느새 눈빛은 그 집의 안쪽이다. 푸른 불길을 따라 시커먼 팬이 들썩이며 볶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미 면발은 큰 솥에서 목욕을 하고 있으리라. 짤막한 당근과 호박에 듬성 쓸어낸  돼지고기 살점이 웬 떡이냐 하듯 걸려들 것 같은 고소한 느낌이 인다. 꼭 그런 느낌이 드는 곳은 동네에서도 깊숙한 언저리에 있다. 맛으로서 말하는 곳에선 굳이 눈이 띄는 큰 대로변에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곳은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게 되는 것이 의외로 붉은 빛 바랜 꾀죄죄함과 허술함이다.


주인부터서 깔끔하거나 멋들어지지 않으며 책상이나 의자 또한 꽤 오래 써서 때가 잔뜩 묻어 있거나 칠한 것이 반쯤은 벗겨져 있고 뒤뚱거림이 세월로 느껴진다. 어쩌다 본 주문서의 무질서함으로 필경 주인은 오로지 맛에만 관심이 있을 뿐 글이나 셈이 더딜 것이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실제로 나는 맛깔나는 집에서 서투른 계산을 하는 주인을 본 적이 많다. 홀 안쪽엔 조개탄을 때는 난로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큰 주전자가 올려져 있다. 주문을 한 손님들이 의자에 걸터앉아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감싸 쥐고 있는 것이  차 한 잔이다.


차 한 잔은 단지 몸을 녹이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다. 입안을 향긋하게 하며 기다림을 선사한다. 유독 더디게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은 맛의 기대와 더불어 기다림의 맛을 얻는다. 그런 기다림 속에 얻는 맛은 향기롭고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면발 두들기는 소리에 먹는 꿈도 따라 솔솔 익는다. 이미 배고픔은 정점에 닿았다. 때꼽이 낀 고추통과 식초통 간장꾸러미를 물끄러미 마냥 보기가 무료하여 젓가락을 칼 갈듯이 휘저어보기도 하고 반찬이라고 내어놓은 단무지와 양파에 식초를 확 끼얹고서는 한 조각 두 조각 베어 문 것이 절반을 넘어서며  급기야 초조하기도 하지만 주인은 여전히 태평스런 모습이다.


이제나 나오려나 줄곧 가던 시선 속에 거지가 따로 없다. 들어온 순서를 꼬박 기억하여 순서가 틀리지 않은지 따져보기도 한다. 할 수없이 갈 곳 없는 시선은 어느새  옆 자리 묵직한 그릇 쪽에 쏠린다. 지금의 얄팍한 플라스틱하고는 차원부터 틀리다. 잘 들려지지도 않고 깊숙이 파인 사기그릇은 조금 깨져 있거나 그릇 꽁무니에 푸릇하게 새긴 용이 반쯤은 달아나야 제 맛도 날 법 하다. 옆 테이블을 보니 이제는 매콤한 짬뽕 국물 진한 맛이다. 그때  잘못 선택한 주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간혹 들 때도 있기는 하다. 이윽고 배고픔이라기보단 마음의 갈증이 원성으로 돌변하려 할 쯤 주인공은 등장한다.


짜장면은 살짝 익힌 면발 한가운데 수북이 쌓은 짜장이 온통 검게 물들여 도저히 고기와 당근 쪽이 따로 구분이 안 될 정도이며 그 정 중앙에 시작점이 되는 상큼한 순 콩 세알정도가  놓여져 정상을 차지해야 한다. 그 콩을 어찌하란 것인가. 잠시 후 검은 면발에 덮여질 세상을 주저 할 것이라면 한 알 한 알 들어 올려 호흡을 조절하며 시작임을 알리는 예는 갖출 필요도 있다. 긴 면발인 만큼 좌로 면발을 돌려 말 것인가 아니면 우, 그렇게 몇 번을 꼬아 한 입을 만들 것인지 심호흡이 필요로 한다.

그런 짜장면은 일격에 입 주변이 검게 물들여 그것에 의해 정복되었음을 느낄 때 비로소 제 맛이다. 그 맛을 어찌 따로 형언할까. 무엇이든 처음의 만남은 소중하고 중요하다. 그런 짜장면은 내게 있어 좋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내가 짜장면을 처음 만났던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 끝나는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때가 내 평생 털어 가장 공부를 잘하였던 때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황토길 넘어 나와 동생을 데리고 시내로 향하였었다. 눈 맞으며 언덕받이 길을 내려오며 호탕하게 웃던 아버지였다.  나는 그때 다짐하였었다. 지금처럼 아버지를 늘 즐겁게 하여 드리리라. 그 날 아버지는 우리를 처음 중국집에 데리고 갔었다. ‘뎀뿌라’라고 하는 것을 시키고 짜장면을 시켰었다. 처음 대하는 짜장면이었다. 흐릿한 기억 속에 엄마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마도 엄마의 입에 밴 그 습성으로 보아 그 비싼 값에 애들이나 많이 사주라 하지 않았나 싶다.


처음 대하는 맛의 화사함에 동생과 나는 아버지 호주머니 생각은 안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짜장면의 달콤함과 더불어 묻어나던 그때의 아버지 눈빛이 여전히 내게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날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도 못하였을 뿐 아니라 그러한 약속조차도 지우고 살아왔다. 단지 남은 것이 있다 한다면 그 짜장면이 갖는 달콤함이다.


바람 불어 좋은 어느 날 아무 연고도 없는 어느 낯선 곳에서도 그 짙은 후각에 취해 스스럼없이 그 시절의 짜장면이 다시 떠오르며 향긋한 아버지 미소와 더불어 그 눈발 날리던 꽃길이 유령처럼 다가서는 것은 필경 아버지가 내게 심어준 그 서정이 깊고 또 깊기 때문이리라. 그러기에 짜장면은 내게 느낌만으로도 여전히 고소하며 기대 하여도 좋았던 느낌의 대상으로 친근감과 향수를 늘 갖고 내 곁에 머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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